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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개의 파주이야기<5> 심학산과 송익필이야기(3)

입력 : 2018-03-15 16:14:00
수정 : 0000-00-00 00:00:00

묵개의 파주이야기 <5> 


심학산과 송익필 이야기 (3)  





‘망월’과 ‘산행’

심학산의 기세는 멀리서 북악이 서해바다로 강화도 쪽을 향해서 한 자락이 뻗어나오면서 시작된 산세가 교하에서 멈춘 형상입니다. 구봉산(심학산의 옛이름) 앞은 과거에는 뻘밭이었고 교하는 임진강과 한강이 만조시에 들어오는 바닷물이 만나는 곳으로, 해수와 민물이 만나면서 굉장한 장관들이 펼쳐집니다. 

구봉 송익필의 사상은 이런 자연환경에서 형성 되었을 것이다라고 보여집니다.

그의 첫 시는 '망월‘입니다.


            ‘망월’

     안 둥글땐 둥글어짐 더딤이 한이었는데   

     둥근 후엔 어찌하여 쉽게도 이지러지나.

     삼십일 밤 가운데 둥근 것은 단 하룻밤

     백년인생 심사가 모두 이와 같구나 


구봉 송익필 본인의 삶을 잘 표현한 시입니다.


               ‘산행’

     산길을 가다보면 쉬는 것을 잊는다

     앉아서 쉬다보면 가는 것을 잊는다

     소나무 그늘아래 말을 세우고 물소리를 듣기도 하네

     뒤따라오던 사람 몇몇이 나를 앞질러 간들

     제각기 갈 길 가는 터에 또 무엇을 다툴 것이랴.


‘거북이 다시 물로 나가지 못하는 형상’

인생이란 것이 어떤 것을 끊임없이 일관되게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죠. 

자유로가 나면서 물길이 심학산까지 이르지 못합니다. 이것은 마치 구봉 송익필이 ‘거북이가 다시 물로 가지 못하는 것과 같은 형상’, 구봉 송익필의 인생 같은 것을 심학산을 보면서 느낍니다. 송익필은 직접인 정치 무대나 사회에서 활동을 할 수는 없었지만 막후에서 대단한 활동을 함으로서 서인이 장기집권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후대에 가서 우암 송시열이 성장을 하면서 약 250년이 넘는 서인정권의 시대가 열리죠. 서인이 사실상 조선이 망할 때까지 집권을 했다고 볼 수 있지요.





율곡은 플라톤적, 송익필은 아리스토텔레스적

교하를 바라보고 살았던 송익필과 계곡에서 살았던 이율곡의 성장 환경은 사고방식과 이념 등 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율곡은 플라톤적 사고를 가졌고 송익필은 아리스토텔레스에 가까운 생각을 했습니다.

율곡은 사회적 안정이라는 어떤 이상을 설정하고 그것이 실천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수행과 교육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보았지요. 율곡의 사상과 예학은 그의 [격몽요결]이라는 집필에 남아있습니다. 국가가 제도적으로 국민교육을 해야한다 라고 보았고, 교육의 내용은 실용성 보다는 윤리와 도덕에 관한 성격이 강했죠. 


송익필의 진보적 사상이 사라져

송익필이 가졌던 ‘어떤 규범과 제도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라는 적극적, 능동적, 진보적 사상은 김장생으로 넘어가면서 사실상 사라집니다. 오히려 그 반대 쪽에 있던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나뉘면서, 북인이 송익필의 생각을 흡수해서 매우 유연하고 실리적인 사상을 형성하게 됩니다. 임진난 이후, 북인이 정권을 차지하면서 외교정책면에서 매우 유연한 윤원형이나 이덕형 등이 현실적 개혁조치를 합니다. 북인정권에 대해서는 훗날에 다시 경남 함양 이야기에서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송익필이 가졌던 현실적인 성리학적 관점은 유감스럽게도 이어지지 못한거죠. 송익필이 전통적인 주류의 입장에서 서있지 못하게 된 배경입니다. 비운의 신령스런 거북이가 심학산을 보며 애석함으로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마는 거지요. 



묵개 서상욱 

관인학사 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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